어둠 속에서 피어난 바이올린

김다미 바이올리니스트가 현재 사용 중인 악기는 2021년 여름, 프랑스 파리의 악기 제작자 스테판 폰 베어(Stephan von Baehr)의 공방에서 처음 만난 것이다. 그녀는 여러 악기를 시연한 끝에, 제작자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보여주겠다”며 지하에서 조심스럽게 꺼내온 악기를 건네받았다. 그 악기가 바로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하고 있는 바이올린이다.

스테판 폰 베어는 현대 프랑스 악기 제작계를 대표하는 장인으로, 이탈리아 고전 악기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프랑스 특유의 섬세한 음향 감각을 융합하는 제작 철학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악기는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 델 제수 계열의 구조적 이상을 바탕으로, 현대 연주자의 감각에 맞춘 균형감과 투명한 울림을 지향한다. 특히 음의 밀도와 공명, 그리고 시간에 따라 성숙해지는 ‘음색의 진화’를 중시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성은 단순한 복원형 제작을 넘어, “현재의 음악적 감정이 머무는 악기”를 지향하는 그의 철학을 반영한다.

김다미는 이 악기에서 처음 활을 올린 순간, 새로 제작된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랜 세월을 지나온 듯한 고풍스러운 울림이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특히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어두운 색채가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G선의 낮은 음역대에서 두텁고 안정된 사운드가 울려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새 악기라기보다 이미 성숙한 목소리를 가진 악기였다”고 설명했다.

김다미의 연주 스타일은 정제된 감정 표현과 내면적 서정성으로 평가된다. 그녀의 해석은 화려한 테크닉보다 ‘소리의 결’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음 하나하나의 밀도와 숨결에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연주 성향은 스테판 폰 베어의 악기와 유기적으로 맞물린다. 악기의 어둡고 두터운 톤은 김다미의 음악적 해석 속에서 더욱 농밀하게 빛나며, 섬세한 호흡과 긴장감 속에서도 소리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균형감을 만들어낸다. 결국 그녀의 서정적인 접근법은 악기의 질감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며, ‘감정의 농도와 소리의 깊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다.

김다미는 이 악기를 섬세하고 예민한 존재로 여긴다. 하루의 습도나 손끝의 온도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특성이 있어, 세심한 교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악기와의 관계를 ‘아기 같다’고 표현하며, 연주자와 악기 사이의 긴밀한 대화가 음악의 본질을 완성한다고 말한다.

2021년 9월, 악기를 손에 쥔 지 약 두 달 후 진행된 통영의 앨범 Timepass 녹음은 이 악기와의 첫 공식적인 여정이었다. 3일간의 녹음 작업을 통해 악기와 급속도로 가까워졌으며, 그녀는 “그 시기에 악기와 함께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지금도 김다미는 이 악기의 어둡고 두터운 음색,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는 사운드에 큰 만족을 느끼고 있다. 그녀는 “소리가 점점 더 멀리 뻗어나가며 발전하는 악기”라고 평가하며, 이 악기가 자신의 음악적 여정과 함께 성숙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